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7년 외환 위기/영향 (문단 편집) ==== 체육계 ==== [[KBO 리그]]의 경우 모기업이 직접 부도를 당한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는 선수를 팔아서(혹은 선수 임대) 연명했고 이 때문에 하위권을 전전했다. 해태는 그나마 상황이 괜찮던 1996년 시즌을 앞두고 신인 [[박재홍(야구)|박재홍]]의 지명권[* 박재홍은 1992 시즌 해태의 1차지명 선수였으나 입단을 거부하고 연세대에 진학했다. 당시 주로 대졸예정 선수들이 1차지명을 받았던 때에 고졸예정이었던 그가 1차지명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해태가 박재홍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해태는 1996 시즌 1차지명 선수였던 [[김종국(야구선수)|김종국]]을 잡느라 박재홍까지 잡을 돈이 없었다. 고졸 우선지명 선수 중 대학시절 국가대표까지 지낸 포수 [[김상훈(1977)|김상훈]]과 훗날 메이저리거가 되는 투수 [[서재응]]이 대학진학을 선택하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을 정도였다. 그나마 나머지 한 명인 투수 [[김상진(1977)|김상진]]을 입단시키기는 했으나 김상진은 1998 시즌 종료 후부터 위암 투병을 하다 1999년 6월 10일 요절하고 말았다.]을 새롭게 출범한 [[현대 유니콘스]]로 양도했고[* 그 반대급부가 외환위기로 오늘내일 하던 해태 마운드를 힘겹게 지탱한 [[최상덕]]이다.] [[선동열]]을 [[주니치 드래곤즈]]에 임대료 30억원을 받고 임대 보냈으며,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자마자 [[이종범]]을 50억 이상의 이적료를 받으며 주니치 드래곤즈에 보냈고 [[조계현]]을 5억에 [[삼성 라이온즈]]에 양도했다. 이듬해인 1998년 시즌이 끝나자 [[임창용]]을 [[양준혁]], [[곽채진]], [[황두성]]에 20억원을 얹어 삼성으로 다시 보내야 했다. 또한 지명했던 유망주인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이 [[메이저 리그|MLB]]로 가는 것을 손가락만 빨면서 지켜보아야 했다. 쌍방울은 그마저도 없어서 1997 시즌이 끝나고 [[박경완]]을 이근엽+김형남+9억에, 1998 시즌 중에는 [[조규제]]를 [[박정현(투수)|박정현]]+[[가내영]]+6억에 현대 유니콘스로 양도했다. 1998 시즌이 끝나자 [[김기태(1969)|김기태]]와 [[김현욱(야구)|김현욱]]을 [[양용모]], [[이계성]], 20억원과 묶어서 삼성과 트레이드를 했다. 게다가 쌍방울은 1999년에 2군도 아예 해체시켜버렸다. 해태는 2001년 시즌 중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어 [[KIA 타이거즈]]로 재탄생했고 쌍방울 구단은 아예 '''팀이 해체'''되어 [[SK그룹]]이 자유계약이 된 쌍방울의 선수단 및 지명권을 인계하고 [[SK 와이번스]][* 2021년에 [[신세계그룹]]이 인수하여 [[SSG 랜더스]]로 재창단하였다.]로 '''재창단'''했다. 즉 '''실질적으로 쌍방울을 흡수했으나 형식적으로는 구단 자체를 인수한 게 아니다'''. 게다가 하이닉스가 최대주주였던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문제가 겹치면서 인천 야구의 정통성 논란이 터지게 되었다. 상세 내용은 [[삼청태현]] 문서를 참고. [[K리그]]의 경우 [[부산 아이파크|부산 대우 로얄즈]]가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됐다. [[부산 아이파크]]는 대우 로얄즈 시절 [[축빠]]이던 [[대우그룹|대우]]의 [[김우중]]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안정환]], [[김주성(축구)|김주성]] 등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앞세워 K리그 최고의 인기구단 중 하나이자 강팀으로 군림했었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도산으로 구단 해체 위기까지 갔다가 간신히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된 이후로는 기업구단답지 않은 투자로 점차 상위권에서 밀려나더니, 끝내는 [[2015년]] 기업구단 최초로 2부 리그인 [[K리그2]]로 강등됐다. 야구도시로 알려진 [[부산광역시|부산]]이지만, ~~김용희의 588에 힘입어~~ 롯데 자이언츠 이상의 인기를 누리던 1990년대 대우 로얄즈를 생각해 보면... 대전 지역의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창단했던 [[대전 시티즌]]도 계룡건설을 제외한 다른 구성 기업들의 도산으로 계룡건설의 후원으로 근근히 버티다 끝내 [[2006년]] 완전한 [[시민 구단]]으로 전환했다.[* 2020년에 [[하나금융그룹]]이 인수하여 다시 기업구단이 되어 대전 하나 시티즌으로 재탄생하였다.] 시민 구단화 이후 고질적인 재정난으로 역시 2부리그나 들락거리는 신세. 이 여파는 실업축구라고 안심할 수는 없어서 [[1997년]]에는 [[국민은행 축구단]]과 [[한일은행 축구단]], 기업은행 축구단, 이랜드 푸마가, [[1998년]]에는 최초의 프로축구단이었던 (구)[[할렐루야 축구단]]과 한일생명 축구단, 주택은행 축구단이 모두 각각 해체되었다. ~~[[고양 자이크로|그리고 할렐루야의 이름만 계승한 끔찍한 혼종이 등장하게 되는데...]]~~ [[KBL|프로농구]]의 [[부산 kt 소닉붐|광주 나산 플라망스]]도 역시 모기업인 나산그룹이 망해서 이후 골드뱅크-코리아텐더로 2단 변신 후 2003년 말 [[KTF]](현 [[KT]])에 인수되었다. 한편 [[WKBL|여자농구]]의 경우 남자농구가 프로화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프로화에 의지가 없는 팀들을 정리하는 방법으로 프로화를 준비했으나 IMF 이전에 13개 팀이었던 것이 5개 팀으로 반토막 이상이 나는 후유증을 겪게 된다. 여자농구팀을 운영했던 다수의 팀들이 은행권 팀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는 상당히 큰 타격을 입었음이 분명하다. 실업 리그였지만 거의 프로리그나 다름없었던 배구 역시 전설의 남자배구팀인 [[고려증권 배구단]]이 모기업의 부도로 1998년을 끝으로 해체됐고, 여자배구는 더욱 더 심한 상황이었던지라 9개 팀이 5개 팀으로 쪼그라드는 암흑기를 맞았다. 후지필름, 효성, 한일합섬, SK케미칼이 해체됐다. 민속[[씨름]](프로씨름)의 경우 1997년에 부산조흥금고 호랑이, 세경진흥 사자(구 삼익가구 사자)가, 1998년에 [[일양약품]] 원비[* [[강호동]]이 씨름선수 시절 바로 이 팀 소속이었다.], 청구 청룡, 1999년에 동성[* 모기업은 동성종합건설이다.] 백호(구 한보 멧돼지), 진로 두꺼비가 각각 해체되었다. 이 사태로 인해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에서 매회 메달을 따는 비인기 종목들도 안전할 수 없었다. 1997년에 [[국민은행(1963년)|국민은행]]은 테니스팀 및 사격팀을, [[중소기업은행]]은 사격팀을[* 2004년 재결성.], [[해태그룹]]은 역도팀을, 극동그룹은 동서증권 양궁팀을, 동아그룹은 동아증권 탁구단을, [[외환은행]]이 여자 탁구단을 각각 해체한 걸 필두로 1998년에 [[제일제당]]은 자사의 마라톤팀, 쌍방울그룹은 야구팀에 앞서서 쌍방울 마라톤팀과 석탑건설 아이스하키단을, [[조흥은행]]은 사격팀을, 1999년에 [[한국주택은행]]은 사격팀, 2000년에 [[대우중공업]]이 테니스팀을 각각 해체했다. 그 여파 때문인지 몰라도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평소 10위권보다 낮은 종합 순위 12위라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드니 올림픽은 네덜란드, 영국, 루마니아 등이 대분전하는 등 총 11개국이 금메달 10개 이상을 획득한 대회였다. 역대 올림픽에서 10개국 이상이 두자릿수 금메달을 획득한 대회는 시드니 올림픽과 [[2020 도쿄 올림픽]] 둘 뿐이며, 이 두 대회 모두 대한민국 대표팀은 10위권 밖으로 밀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